1. 서론
"나의 우상? 토니 크로스" - 페데리코 발베르데
UEFA 챔피언스리그 3연패를 포함해 총 4회 우승을 이뤄낸 주역 토니 크로스가 유로 2024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을 10년간 책임진 그는 현재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고, 그것은 바로 웸블리에서 펼쳐지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토니 크로스는 자신을 우상이라 칭하던 한 선수와 합을 맞추게 된다.
그는 바로 페데리코 발베르데이다. 발베르데에게 이 결승전은 꽤나 뜻깊은 경기일 것이다. 그가 일전에 재미삼아 언급했듯, 자신의 등번호 15번과 팀의 빅이어 수를 맞출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어쩌면 15번을 달고 뛸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다. 토니 크로스가 자신의 8번의 후계자로 직접 발베르데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토니 크로스는 결승전 이후, 더이상 마드리드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없더라도, 레알 마드리드는 페데리코 발베르데라는 좋은 선수를 필두로 그의 유산을 이어나갈 것이다. 발베르데는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우상에게 후계자로 지목받는 입지의 선수가 되었을까.
2. 페데리코 발베르데 (feat. 토니 크로스)
1998년 7월 22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출생, 발베르데는 우루과이 최대 빅클럽 페냐롤을 거쳐 2016년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에 입단하게 된다. 2017/18 시즌은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에서 임대생활을 하며 라리가 경험을 쌓았고, 2018/19시즌엔 꿈에 그리던 레알 마드리드의 1군 멤버가 된다. 그의 등번호는 15번, 직전 시즌 테오 에르난데스가 달았던 바 있는 그다지 특별하진 않은 번호였다.
발베르데의 레알 마드리드 커리어는 시작부터 빛나진 않았다. 쟁쟁한 미드필더진에 밀려 다니 세바요스, 마르코스 요렌테와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했고, 지단 감독이 2019년 3월 소방수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시즌인 2019/20 시즌을 앞두고, 발베르데의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결정이 내려진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 상태를 살펴보자. 크-카-모 조합이라 불렸던 토니 크로스, 카를루스 카세미루, 그리고 루카 모드리치는 모두 2018/19 시즌 팀과 함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이스코는 피지컬과 폼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세바요스와 요렌테는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하지만, 팀의 부진한 활약에 일조한 선수들임에도 지단 감독 입장에선 크-카-모 조합을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3연패 시절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사용했던 조합이고, 무엇보다도 이 선수들의 기량 수준이 너무 뛰어났기에 이들을 살려내야만 했다. 그렇다면, 비교적 젊은 이제야 30줄에 들어선 크로스와 20대 후반의 카세미루를 최대한 살리고, 노쇠한 모드리치 자리에 젊은 피 하나를 기용하는 것이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여기서 지단 감독은 마르코스 요렌테와 다니 세바요스를 각각 완전이적, 1년 임대로 떠나보내는 강수를 두고, 페데리코 발베르데를 1군에 남기게 된다. 직전 시즌 1군에서 돋보이는 활약상을 보인 것은 전혀 아니었기에, 많은 팬들은 이에 대해 의문을 표했고, 팬들의 의문에 답하듯, 언론은 폴 포그바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을 계속해서 양산해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지단 감독의 선택은 통했다. 발베르데는 우측 메짤라 위치에서 훌륭한 모습을 선보이며 수비 가담부터 패스, 그리고 박스 타격까지, 진정한 육각형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였다. 직전 시즌 선발로 10경기도 뛰지 못했던 모습과 달리, 시즌 44경기에 출전하여 2골과 5개 도움을 기록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발베르데의 급성장에 힘입어, 중원 파트너였던 카세미루와 토니 크로스의 수비 부담은 적어졌고, 그들이 받던 압박 또한 분산되며 모두 원래의 실력을 되찾아 좋은 활약을 펼치게 되었다. 모드리치 역시 체력 안배를 받을 환경이 조성되니,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좋은 폼을 되찾기도 했다.
이어진 2020/21 시즌도 시작은 순조로웠다. 리그 극초반 엘 클라시코에서의 선제골을 포함해 3골을 터트리며 직전 시즌의 쾌조를 이어나가는 듯했으나, 당시 레알 마드리드에 드리웠던 부상 악령을 발베르데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출전할 때마다 좋은 활약상을 보였으나, 발목 쪽에 고질적인 부상을 달고 다녔고, 결국 시즌 33경기 출전에 그치고 만다.
발베르데가 결장한 기간동안, 모드리치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절정의 폼을 보였고, 크로스 역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발베르데를 누구보다 신뢰했던 지단 감독은 팀을 떠났다. 발베르데의 충성심에 따른 팬들 사이의 지지도는 매우 높았으나, 다음 감독이 베테랑 선수들을 선호하는 카를로 안첼로티였던 만큼 그의 입지는 조금이나마 흔들렸다.
이런 우려는 틀리지 않았는지, 발베르데는 크-카-모 조합에 밀려 전반기엔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로테이션 멤버처럼 뛰었다. 하지만, 시즌이 지날수록 크-카-모 조합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발베르데에게도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다.
크로스, 카세미루, 모드리치 중 크로스와 카세미루는 기동력이 뛰어나다 보긴 힘든 선수들이다. 심지어 카세미루는 이전 시즌들과 달리 축구지능이 상당히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이며, 크로스에게 압박 하중을 더욱 실어주는 원인이 되기도 할 정도였다. 토니 크로스의 뛰어난 킥과 조율 능력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기동력을 통해 압박을 분산시켜 줄 비장의 수가 필요했고, 안첼로티 감독은 여기서 발베르데를 선택한다.
하지만, 크-카-모 조합은 계속 가동되었다. 그렇다면 발베르데의 자리는 어디라는 것인가? 바로 우측 윙어 자리이다. 발베르데에게 사실상 측면 미드필더 같은 롤을 맡기며, 그의 왕성한 활동량을 통해 크-카-모의 떨어지는 기동력을 커버해냈고, 이런 기용에 힘입어 레알 마드리드는 2021/22 시즌, 라리가 우승에 더불어 14번째 빅이어를 들게 된다. 특히, 발베르데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비니시우스의 결승골을 판데이크를 무력화시키는 환상적인 크로스로 어시스트하며, 최고의 활약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진 2022/23 시즌에 발베르데의 진가가 발휘된다. 1년간 어디론가 사라져 있던 그의 슈팅 영점이 다시 돌아오며, 우측 윙과 우측 메짤라 위치를 오가며 시즌 56경기에 출전해 12골과 7개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진정한 핵심으로 거듭난다. 그렇다면 크로스의 상황은 어땠을까. 카세미루가 이탈한 후, 오렐리앵 추아메니가 전반기엔 자주 나오며 토니 크로스를 옆에서 도왔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추아메니가 주전에서 밀려나고 감독은 크로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크로스는 포백 보호에 약점을 보이며 고전했기에, 안첼로티 감독은 발베르데를 크로스의 보좌 역으로 전반기보다 낮은 위치에서 기용했고, 그 덕에 크로스는 무사히 시즌을 마쳤다. 발베르데의 주-조연을 오가는 빛나는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보이며 코파 델 레이를 우승했지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선 실패를 거듭하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현재 시점, 2023/24 시즌이 찾아오며, 발베르데는 역시나 추아메니, 크로스와 함께 3선을 이루며 크로스와 팀을 옆에서 헌신적으로 보좌했다. 시즌 내내 레알 마드리드의 거의 모든 공식경기에 출장한 것은 덤이다. 새로운 영입생 주드 벨링엄이 발롱도르 얘기가 나올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인 것도 발베르데 덕에 가능했고, 크로스가 자신의 현역 마지막 시즌에 월드 베스트급 활약상을 보인 것도 모두 발베르데 덕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발베르데는 여태껏 갖고 있던 모든 장점들에 더불어, 토니 크로스의 조율 / 전개 능력까지 흡수한 듯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크로스의 빌드업 부담까지 덜어주어 크로스 역시 뛰어난 활약상을 보였다. 이러한 호재를 보인 끝에, 레알 마드리드는 한 시즌만에 라리가 트로피를 탈환했고,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의 불명예를 딛고 일어나 결승에 진출했다. 이제 진정한 레알 마드리드의 8번이 되기 위한 준비는 모두 마친 듯 보인다.
3. 토니 크로스의 라스트 댄스, 그리고 발베르데
토니 크로스는 2014/15 시즌부터, 10시즌간 레알 마드리드에서 팬들에 기억에 남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비록 부진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레알 마드리드의 든든한 8번이자 교수님, 마에스트로였다. 그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앞둔 상태로 은퇴를 선언했으며, 도르트문트의 마르코 로이스의 퇴단에 대항할 레알 마드리드의 동기부여 요소를 적절한 타이밍에 만들어냈다.
토니 크로스는 언제나 그런 선수였다. 언제나 거침없이 자신의 주장을 말한다. (물론 이에 따라 수많은 논란과 비판을 달고 다니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미래에 관하여,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힌트를 지속적으로 팬들에게 던지고 있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나의 마지막 팀이 될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은퇴하고 싶다.', '30대 후반에도 필드 위에서 뛰고있는 내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등등.
그는 그가 암시했던 그대로, 자신의 고점 수준 폼을 보이던 한 시즌을 보내던 중 은퇴를 선언했다. 정말 토니 크로스다운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팀 동료들과 축구계 관련 인물들이 SNS에 헌정 게시물 혹은 글을 남기던 도중, 발베르데만 유독 SNS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베르데는 자신의 우상에 대한 헌정 영상을 만들어서 오느라 늦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게시물에 남겨진 토니 크로스의 댓글은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 ' 페데, 너는 네가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사람인지 알 거야. 나는 너를 선수이자 사람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지. 너는 미래에 이 팀을 주장으로서 이끌 모든 자질을 갖고 있어. 난 언제나 네 편에 서있을거야! 그리고 앞으로 우린 또 다른 주제를 논의해야 할거야... #8' (크로스가 말한 또 다른 주제는 발베르데의 8번 계승을 의미한다.)
발베르데가 크로스를 우상으로 보았으며, 언제나 자신의 커리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람으로 보았듯, 크로스에게 발베르데도 그만큼이나 중요한 선수이자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크로스가 안심하고 은퇴를 선언할 수 있는 이유의 일부분 역시 발베르데에 있다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닐테니 말이다.
토니 크로스는 발베르데를 자신의 등번호 8번의 후계자로 뽑았다. 그렇게 웸블리에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토니 크로스의 라스트 댄스이며,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자신의 15번과 빅이어 개수를 맞출 기회이자, 과거의 15번을 뒤로하고 새로운 8번으로 도약하는 경기가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기분 좋게 이뤄지려면, 마르코 로이스에겐 미안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이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어 빅이어를 손아귀에 쥐어야만 한다.
부디 토니 크로스의 라스트 댄스가 순조롭게 끝나길 바란다.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핵심으로서 커리어 두 번째 빅이어를 들어올려 15번으로서 임할 마지막 경기를 잘 끝내길 바란다. 크로스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 열릴 새 시대의 포문을 빅이어와 함께 순조롭게 열어가길 바란다.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의 선전을 기원하며 글을 마치겠다.
" 난 당신이 꼭 알았음 좋겠어요,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 일부는 언제나 당신 덕분에 생긴 것일 겁니다." - 페데리코 발베르데, 토니 크로스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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